1928년 9월, 런던 세인트 메리 병원의 세균학 교수 알렉산더 플레밍 Alexander Flemming이 페니실린을 발견하면서 '항생제의 시대'가 열렸다.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폐렴부터 패혈증에 이르는 다양한 세균 감염에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었다.
페니실린은 천연두, 콜레라, 결핵, 성홍열, 폐렴, 임질, 뇌수막염, 디프테리아 등 세균성 감염 치료의 기반이 되었다. 훗날 항생제는 세균성 감염 치료뿐만 아니라 감염 악화를 억제하는 의약품으로 자리 잡았다.
배경
세균성 감염 치료에 항생 물질이 있는 곰팡이와 사상균을 이용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고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런 초기 시도들은 의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 영국의 외과의이자 &소독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셉 리스터 Joseph Lister(1827-1912)는 사상균에 항생 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 사실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1870년 독일의 생물학자 로베르트 코흐 Robert Koch(1843-1910)와 프랑스 출신의 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 Louise Pasteur(1825-1895)와 쥘 프랑수와 쥬베르 Jules Francois Joubert(1825-1895)는 특정 세균이 특정 질병을 유발한다는 세균 이론의 원칙을 확립했다. 또한 그들은 다양한 배양 환경에 특정 세균을 주입했을 때 더 치명적인 박테리아의 증식을 억제한다는 점을 증명했다.
페니실린의 발견의 의학의 역사에 전환점이 되었고, 훗날 플레밍은 타임지 선정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인으로 선정되었다.
1928년 9월 28일 새벽에 눈을 떴을 때는 세계 최초로 항생제를 발견해서 의약분야의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거창한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건데 그게 바로 제가 한 일인 것 같습니다 .
알렉산더 플레밍
알렉산더 플레밍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자 영국 육군의무부대에 입대했다. 그는 서부 전선에 있는 야전 병원에서 대포와 박격포의 폭발로 끔찍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주로 치료했다. 군인들은 부상으로 패혈증에 걸렸고 혈액 감염으로 사망하는 일이 잦았다. 플레밍은 상처 치료와 감염 예방에 사용된 치료법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 결과 그는 상처를 요오드, 페놀 등의 소독제로 상처를 치료하는 리스터의 무균 소독법(Lister's Antiseptic System)이 상처의 가장 깊은 곳까지는 침투하지 못 해 해로운 세균을 모두 죽이지 못한다는 점을 밝혔다. 리스터의 무균 소독법은 당시에 획기적인 치료법이었으나 사실은 소독약이 자연 치유 물질까지 파괴해서 사망자가 꽤 많았었다. 플레밍은 깊은 상처를 세척하고 소독하려면 소독제와 함께 고농도의 식염수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리스터의 무균 소독법과 전쟁 부상에 관한 플레밍의 발견은 1917년 의학저널 [란셋 Lancet]에 실렸지만, 전선에 있는 대다수의 의사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플레밍은 세인트 메리 병원으로 돌아가 세균과 치료법에 관한 연구를 계속했다. 1921년, 그는 한 실험에서 배양 접시 한 개가 공기 중의 세균에 오염됐으나 콧물을 주입하자 세균 증식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항균 물질 증식에 관한 추가 실험으로 사람의 눈물, 가래, 혈액, 정액, 고름, 계란 흰자에 세균 증식을 억제하는 특성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1922년 5월, 플레밍은 영국왕립학회와 학술대회 논문집에 다양한 세포와 분비물 안에 있는 항생 물질 라이소자임 lysozyme의 발견을 발표했으나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 했다.
발견
1928년 9월 3일, 플레밍은 스코틀랜드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왔다. 그는 목 따가움, 종기, 부스럼의 원인균인 포도상구균이 들어있는 배양 접시를 뚜껑이 열린 채 작업대 위에 두고 휴가를 갔었다. 그 중 한 개의 배양 접시에서 포도상구균이 살아있는데도 감염되지 않고 항생 물질을 분비하는 푸른곰팡이(페니실리움 노타텀 Penicillium notatum)가 자라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1929년 3월 7일, 그는 항생 물질을 분비하는 푸른곰팡이를 페니실린이라 이름 붙였다. 같은 해 6월, 플레밍은 그 실험에 관한 논문을 [영국실험병리학회지 British Journal of Experiment Pathology]에 게재했다. 하지만 과학계는 그의 연구에 관심이 없었고, 2월에 의학연구학회 Medical Research Club에서 라이소자임의 발견에 대해 발표한 내용 역시 주목을 받지 못 했다.
플레밍은 강의와 논문을 통해 페니실린은 순수한 형태로 생산하기 어렵고, 항생제의 대량생산은 불가능하다고 시인했다. 1930년대에 그의 연구는 거의 주목 받지 못 했지만 그는 페니실린의 소규모 생산을 지속했다. 1936년 제2차 국제미생물학회the Second International Congress of Microbiology에서 모든 감염에 페니실린이 강력한 항생제가 될 수 있다고 제시했으나 여전히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 했다. 1941년 후반이 될 때까지도 [영국의학저널 British Medical Journal]은 페니실린의 유용성을 그리 대단치 않게 여겼다.
페니실린의 적용 및 실험
플레밍이 맞닥뜨린 장애물을 극복한 사람은 옥스퍼드 대학 윌리엄던 병리학과의 과학자들이다. 그들의 목표는 페니실린의 배양, 추출, 정제, 보관이었다. 에드워드 에이브러햄 Edward Abraham(1913-1999)은 페니실린의 정확한 구조를 발견했고, 노먼 히틀리 Norman Heatly(1911-2004)는 페니실린을 물에 녹여 산도를 변화시킨 후 불순물을 제거한 페니실린을 추출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두 사람의 연구 성과로 효과성 입증을 위한 동물 실험에 필요한 페니실린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페니실린의 독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쥐, 생쥐, 토끼, 고양이를 다양한 유해성 세균에 노출시킨 후 페니실린을 주사했다. 기니피그의 소화 기관에 서식하는 장내 미생물군(또는 장내세균총)은 페니실린을 투여했을 때 파괴되면서 설사를 일으키고 기니피그는 죽음에 이른다. 다행히 이 사실이 먼저 밝혀져 연구자들은 기니피그를 동물 실험에 사용하지 않았다. 1940년 5월, 하워드 플로리 Howard Florey(1898-1968)와 에른스트 체인 Ernst Chain(1906-1970)은 생쥐에 연쇄구균을 주입했다. 처치를 하지 않은 집단의 생쥐들은 패혈증으로 죽었지만 페니실린을 처치한 생쥐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더 많은 동물들을 이용한 추가 실험들 역시 이와 유사한 결과를 도출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첫 실험은 1929년 초 플레밍이 비강 감염 치료에 페니실린을 이용한 것으로 시작됐으나 원인균이 페니실린에 반응하지 않아 실패했다. 1930년 11월 플레밍의 제자 세실 조르주 페인 Cecil George Paine(1905-1994)이 페니실린을 사용해 성인과 아동의 결막염 치료에 성공했다. 연구자들은 페니실린으로 세균 감염을 치료하려는 시도를 상당히 많이 했다. 1940년 9월, 경찰이던 앨버트 알렉산더 Albert Alexander는 정원을 관리하다 얼굴을 긁혔다. 그는 연쇄상구균과 포도상구균에 감염됐고, 초기에 시도한 황치료는 효과가 없었다. 1941년 2월, 플로리와 체인은 알렉산더의 치료를 위해 페니실린 사용 허가를 얻었다.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충분한 양의 페니실린을 생산할 수 없었고, 1941년 3월 결국 그는 사망하고 말았다. 그 이후 플로리와 체인은 상대적으로 소량의 페니실린이 필요한 아동을 대상으로 실험했고 치료에 성공했다.
페니실린의 대량생산과 그 영향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때 독일군이 런던을 폭격하자 런던에 있던 페니실린 대량생산 설비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페니실린 생산 설비는 플로리가 연구진으로 합류한 영국 출신의 생물학자·생화학자인 노먼 히틀리의 연구소가 있는 미국 일리노이 주 피오리아로 옮겨졌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페니실린 대량생산을 위해 미국의 제약회사, 병원, 의사, 과학자들을 지원했다. 1943년 여름, 연구실 조교 메리 헌트 Mary Hunt가 훗날 페니실린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황금빛을 띤 예쁜 곰팡이’(페니실린 크리소게눔 Penicillin chrysogenum)로 뒤덮인 켄털루프 멜론을 가져왔을 때 비로소 돌파구가 열렸다. 페니실린 생산량은 급격히 증가했고, 그 결과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한 모든 부상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페니실린은 대규모로 도입됐고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제1차 세계대전에 세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은 거의 20%에 달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페니실린이 사용되면서 세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은 1% 미만으로 감소했다. 그 후 80년간 항생제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하면서 보건의료는 혁신적으로 개선됐다. 인류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의약품 산업에서는 약품의 발견 방식을 바꾸고 초창기에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항생제를 생산했다. 임상 현장에서는 항생제를 통해 치명적인 질병에 접근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꼈다. 최근 수십 년 간 내성을 가진 '슈퍼 버그'가 증가하면서 인류의 건강과 항생제 사용이 변화했다. 특히 소아과에서 두드러지는 항생제 남용, 동물 사료용 곡물에 항생제 사용 등이 슈퍼 버그를 증가의 원인이 되었다. 따라서 경미한 감염에는 항생제 사용을 줄이고 있으며, 사료 산업에서는 더 이상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또한 치명적인 세균의 내성균에 대처할 새로운 형태의 항생제를 개발하려는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페니실린의 발견 이 후, 이를 발견하고 적용한 공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수십 년 간 이어졌다. 알렉산더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발견한 사람으로 가장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플로리·체인·히틀리의 연구팀, 플레밍의 연구 성과를 개선하고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고안한 옥스퍼드의 연구팀 역시 공을 받아 마땅했다. 1945년 플레밍, 플로리, 체인은 노벨생리학·의학상을 공동 수상했고, 45년 후 히틀리는 최초로 노벨위원회가 수여하는 명예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럼에도 항생제가 수많은 인류의 목숨을 구한 것은 현대사의 기정사실이 되었다. 20세기 초에는 천연두·폐결핵·콜레라·폐렴 등 세균성 감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남녀 평균 기대수명은 47세에 불과했다. 20세기에는 항생제 사용으로 선진국의 평균 기대수명이 78세로 급격히 향상되었으며, 초기 감염 대신 암·뇌졸중·심장병 등 비전염성 질병이 주요 사망 원인이 되었다.
페니실린으로 감염성 질병 연구와 의약품은 완전히 변했다. 환자의 기대치와 제약회사들의 구조를 바꿨고, 미생물학계는 새로운 지식과 이해를 갖게 되었으며, 다른 과학적 발견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베넷, 163)
